사무실을 빼던 날, 임대인이 내민 원상복구 견적서를 보고 잠깐 말을 잃었다. 멀쩡히 쓰던 바닥이며 벽까지 "새것처럼" 돌려놓으라며 수백만 원을 불렀다. 그때 알았다 — 원상복구는 "쓰기 전 상태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닳은 건 빼고"가 원칙이라는 걸. 총무팀이 퇴거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들을 하나씩 답으로 정리했다.
Q1. 원상복구가 "새것 상태로 돌려놓으라"는 뜻인가요?
아니다. 민법 제654조·제615조는 임차인에게 원상회복 의무를 지우지만, 여기엔 큰 단서가 있다. 통상의 손모(정상적으로 쓰다 저절로 낡은 부분)는 임차인 책임이 아니다. 대법원도 "통상적인 사용으로 생긴 목적물의 상태 악화나 가치 감소는 임차인의 귀책 사유가 없으므로, 특약이 없는 한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본다(대법원 2017다268142). 애초에 임대료라는 게 그 자연스러운 마모를 전제로 받는 돈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낡은 건 임대인 몫, 내가 고의·부주의로 망가뜨린 건 내 몫 — 이 한 줄이 전부다.
Q2. 그럼 뭐가 내 책임이고 뭐가 임대인 책임인가요?
자주 부딪히는 항목만 추리면 이렇다. 애매하면 "내가 일부러 또는 부주의로 만든 흠이냐"를 기준으로 보면 대체로 맞는다.
| 항목 | 임차인 부담(귀책) | 임대인 부담(통상손모) |
|---|---|---|
| 벽지 오염·훼손 | 담배 그을림, 심한 오염, 구멍 | 일반적 변색, 햇빛에 의한 퇴색 |
| 바닥재 | 무거운 가구 끌기로 인한 긁힘 | 자연적 마모, 색 바램 |
| 도어·창호 | 충격으로 인한 파손, 잠금장치 분실 | 노후화로 인한 작동 불량 |
| 에어컨·조명 | 고의 파손, 분실 | 수명 다한 소모품, 전구 교체 |
| 인테리어 | 임차인이 시공한 칸막이·바닥재 철거 | 임대인이 제공한 기존 시설 |
Q3. 7년 쓴 에어컨을 새것 값으로 다 물어줘야 하나요?
그럴 필요 없다. 그날 견적을 깎을 수 있었던 게 바로 감가상각이다. 이미 닳은 만큼은 값에서 빼야 한다. 공식은 이렇다.
임차인 부담액 = 수리 비용 × (잔존 내용연수 ÷ 총 내용연수)
내용연수 10년인 시스템에어컨을 7년 쓴 뒤 교체비가 200만 원 나왔다면, 잔존 내용연수는 3년이다.
임차인 부담 = 200만 원 × (3 ÷ 10) = 60만 원. 새것 값 200만 원이 아니라 60만 원이라는 얘기다.
| 시설물 | 내용연수(통상) | 비고 |
|---|---|---|
| 벽지(도배) | 6년 | |
| 카펫·장판 | 6년 | |
| 에어컨 | 6~10년 | 제조사별 상이 |
| 조명기구 | 6년 | |
| 주방기구 | 5~8년 | |
| 외부 도장 | 5년 |
※ 내용연수와 부담 비율은 법으로 딱 정해진 게 아니라 사안·합의·조정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위 표는 통상 기준일 뿐, 실제 다툼에선 견적서와 감가상각 계산서로 따진다.
Q4. 계약서에 "원상복구"라고만 써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게 제일 위험한 경우다. 그런데 방향은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 막연히 "원상복구"라고만 적힌 문구로는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에게 물리기 어렵다. 그 정도 문구는 법이 정한 원상회복 의무를 확인한 수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 반대로 "도배·장판·청소비는 임차인 부담"처럼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특약은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에게 지우더라도 유효할 수 있다. 즉 특약은 '구체성'이 관건이다. 임차인 입장에선 계약할 때 "임차인이 시공한 것만 원상복구" 식으로 범위를 좁혀서 박아두는 게 최선의 방어다.
Q5. 앞 세입자가 설치한 것까지 내가 철거해야 하나요?
원칙적으로 임차인은 자기가 임차한 당시의 상태로 되돌리면 된다. 대법원도 "임차인이 목적물의 현상을 변경한 때에는 원칙적으로 변경 부분을 철거하는 등으로 임대 당시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2023다249661). 뒤집어 말하면, 내가 들어올 때 이미 있던 시설을 내가 철거할 의무는 원칙적으로 없다. 다만 분쟁을 막으려면 입주 시점의 현황을 계약서에 기재하고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이 결정적이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 흔한 원칙도 소용이 없어진다.
Q6. 입주할 때 뭘 챙겨두면 나중에 안 싸우나요?
원상복구 다툼의 승패는 대부분 "입주할 때 상태를 증명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시점별로 이것만 챙겨도 웬만한 분쟁은 미리 막힌다.
입주 전 (D-0)
- 모든 시설물 상태를 사진·동영상으로 촬영 (날짜 기록 필수)
- 임대인과 공동으로 시설물 점검표 작성·서명
- 계약서에 원상복구 범위 특약 명시 ("임차인 시공 인테리어만 원상복구" 등)
- 기존 노후 시설물은 계약서에 현황 기재
임대 기간 중
- 추가 공사 시 임대인 서면 동의 받아두기
- 주요 시설물 변경 이력 기록 유지
- 소모품(전구·필터 등) 교체 내역 기록
퇴거 전 (D-30)
- 임대인과 사전 합동 점검 실시
- 원상복구 범위·비용 협의 후 서면 합의서 작성
- 공사 업체 견적서 받아두기 (과도한 청구 방어용)
- 퇴거 후 최종 촬영으로 상태 기록
Q7. 과도한 복구비를 청구받으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감정으로 맞서지 말고 이 순서로 가면 된다.
- 입주 시 촬영 자료 제시 — 기존 시설물의 노후 상태부터 입증
- 감가상각 계산서 제출 — 실부담액을 계산해서 들이민다
- 전문 업체 견적서 확보 — 임대인 청구액이 적정한지 비교
-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신청 — 무료, 소송 전 먼저 권장
- 소액사건심판·민사소송 — 조정이 안 되면 마지막 수단
참고로 임대인에게도 시간 제약이 있다. 원상복구가 늦어져 손해가 났다며 몇 달 치 임대료 상당액을 통째로 청구하더라도, 법원은 임대인이 스스로 복구에 착수해 손해를 줄일 수 있었던 기간까지만 인정한다. 무한정 방치해두고 그 기간 전부를 임차인에게 떠넘길 수는 없다는 뜻이다. 퇴거·분쟁 절차 전반은 상가·사무실 임대차 분쟁 대응 글과 함께 보면 정리가 된다.